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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값 5차파동 : 5차례의 파동 정리하기

by 100살부자 2022. 12. 1.

 

< 1차 파동 >

대표아파트 노란색

 

60년대 - 국산 가전제품으로 쏟아져 나오며 생활혁명이 일어남 (냉장고, TV, 세탁기 → 70년에 등장한 맨션아파트 도시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는 완결판)

  • 61년 마포아파트 임대
  • 65년 양화대교 들어섬 / 한남동 힐탑 아파트
  • 67년 컴퓨터가 국내에 도입됨
  • 68년 판잣집 철거 정책
  • 69년 시민아파트에 중산층 및 회사원들이 살게 됨 /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아파트 (선 분양 제도) / '전세'시장이 형성됨

 

70년대 - 원자재값 파동 (철근 파동 → 석유 파동 → 아파트값 파동) / 실물경기는 호황이라 시중에 자금이 풍부했다.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1차 파동이 일어남

  • 70년 월남 특수 / 하반기 불황
  • 71년 '도둑촌'으로 불린 고급주택 / 상류층들이 동부 이촌동 한강맨션아파트로 이동하며 중산층 문화가 꽃을 피움 / 반포지구에 아파트가 들어섬
  • 72년 영동 신시가지 (청담동, 논현동, 신사동)에서 시영 단독주택이 인기리에 분양 / (10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며 부동산에 돈을 묻어두는 대신 전세를 찾음. 전세가율 70% 육박
  • 73년 국민주택이 25.7평으로 굳어짐 / 실물경기 호황 / 철근값이 35% 이상 증가하며 분양 P가 급등함 / *스테그플레이션 발생 (*실물경기는 침체되었으나 물가가 폭등하는 현상)
  • 74년 시민 아파트가 철거를 하며 최초 재건축을 잉태함
  • 74년 (2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아파트가 대세가 됨 / 선 분양제도 실시하여 왕대박 터뜨림
  • 74년 (4월)  석유값이 상승하며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다다랐으나 실물경기 침체되어 시중자금 사정 나빠짐 → 투기성 가수요가 줄어들기 시작. 실질소득이 줄어들며 수요를 위축시켰다. 수요가 위축되니 물가상승의 버팀목도 사라지며 거품가격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 당시 미분양이 수두룩했다.
  •  74년 (9월) 지하철 1호선이 개통 / 양도소득세를 신설한다는 계획발표가 있었다 (이 당시 시장의 예상 : "양도소득세를 걷으면 주택가격이 그 가격이 얹히지 않을까?")

 

# 1차 파동 요약 : 원자재값 파동이라고 할 수 있다. 철근 파동으로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여 석유파동 때 더 큰 폭으로 올라 아파트 파동으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실물경기 호황에 따른 풍부한 시중자금,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환물 심리 등이 더해져 상승을 부추겼다.

 

1차파동의 가장 큰 특징 크게 2가지이다. 첫번째, 정부가 시장 개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의해 시작이 되고 마무리 되었다는 점이다. 두번째, 실물경기의 불황기-안정기-호황기-조정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뭉칫돈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지는 토지가 부동산경기를 이끌어 왔지만, 향후 부동산경기 전체 흐름을 주택시장의 아파트가 주도할 거라는 '아파트 상위' 시대의 막을 열었다.

 

 


< 2차 파동 >

75년 학사 부동산이 주름잡기 시작. 주부들이 신축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남편들의 월급이 줄어들고 물가가 오르면서)

  • 75년 (8월) 베트남이 패망했다. 주택난을 해결하고 침체된 실물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잠실도를 매립하여 '잠실'이 탄생했다. 분양시장의 흐름이 동부이촌동에서, 여의도 및 반포에서, 잠실로 이동했다. 아파트의 건설 지역이 점점 도심에서 멀어져 갔다.

76년 한신공영이 '신반포'라는 반포아파트 옆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조성했다.

  • 76년 (4월) 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며, 공모주 청약이 대세였다. 양도소득세가 신설되었다. 아파트값이 안정되면서 건설사들이 상품성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부구조와 마감재가 좋은 신축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더 붙었다. 분양을 규제하지 않아 투기꾼들이 분양권으로 뒷거래를 하였다. 전매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기 시작하며 분양권 뒷거래 시장이 잠잠해졌다.
  • 76년 (8월)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었다. 반월신도시 (현 안산시) 분양물량이 쏟아졌다. 전세가율이 70%에 육박했다.

77년 여의도 목화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보기 드문 소형아파트라는 점과 수십만원의 P가 붙어 아파트값의 상한선을 올려놓았다. 

  • 77년 (7월)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기 시작하자 기존 아파트값이 50% 상승하였다. 아파트 신드롬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동 근로자들이 벌어온 오일달러가 시중에 유입되었다. 

 

# 2차 파동 요약 : 76년 주택경기 침체로 건축원가 상승요인을 분양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시작되었다. 77년 봄, 핸드백 부대가 신축아파트에 붙는 프리미엄 따먹기에 나섰다. 기존 아파트값이 한 두달 사이에 50%가 오르자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아파트 신드롬'이 일어났다. 아파트 분양가격도 계단식으로 올랐다.

 

오일머니가 유입되어 외환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주택에 대한 절대 수요가 늘어났으나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2차파동은 중동특수를 누리며 구매력을 지닌 유효수요가 크게 증가하며 자생적으로 발생한 파동이라고 볼 수 있다.

 

분양시장에서 시작된 투기바람은 한강변, 강남지역 기존 아파트값을 휘저어 놓고 강북지역으로까지 북상했다. 연립주택이 모인 외곽지를 지나, 대도시 택지, 지방 토지를 차례로 휩쓸고 지나갔다. 땅값도 크게 올라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 명동 땅값이 평당 600~1,000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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